Retro 대항해시대 - 비트코인 제국주의

제국과 전쟁

책 제목에 있는 '제국주의’라는 단어를 보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들의 분투를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걸 보며 '무역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걸 인정한다면, '제국주의’라는 말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전쟁은 본래 누가하는 건가? 맞다. 영토를 넓히고 싶은 제국의 황제가 하는 일이다. 이 책은 패권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그 패권의 중심에 비트코인이 있다.

의아할 수 있다. 17년에 광풍이 일었던 그 비트코인?

맞다. 그 비트코인이다. 그 비트코인을 둘러싸고 전 세계 시장에서 힘 깨나 쓴다는 야수들은 어떻게 자신의 영토를 늘리고 깃발을 꽂을지 다른 야수들을 어떻게 제압할지 전략을 짜고 있다. 다만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감추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야수들에겐 목줄이 달려 있는데 거기엔 어느 나라 야수인지 적혀있다. 즉, 이건 단순히 기업들간의 경쟁이 아닌 국가간의 경쟁이라는 얘기다.

이상하다.

얼핏 유튜브에서 본 영상에서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를 지향하고 중앙권력을 해체하고 사회를 더욱 투명하게 만든다고 한 것 같았는데, 중앙권력이 나서서 인프라를 깔고 경쟁을 하고 있다.

말이 아닌 행동을 봐야 한다. 왜 그렇게 지원을 하고 경쟁을 할까? 사회를 더욱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당연히 그럴일은 없다.
야수에게 피냄새가 나면 반응하듯, 기업에겐 돈냄새를 정부에겐 통제의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반응할 뿐이다.

무슨 말이냐고?

이 책 83~84페이지를 보자.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트코인 암호화 기술의 원천이 NSA라는 점이다. 비트코인의 SHA-256 해시 알고리즘은 NSA가 고안한 것이다. 최초의 인터넷이 미국이 만든 군사적 목적의 네트워크였듯이, 비트코인도 미국 정보기관의 암호화 기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게다가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비트코인은 익명성이 거의 없을뿐더러 정보기관의 감시에 턱없이 취약하다. NSA의 내부 고발자 스노든은 비트코인의 지나친 투명성 신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모든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제한적인 거래 처리 능력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비트코인의 주요한 결함이 맞다. 그러나 나는 비트코인의 훨씬 구조적이고 심각한 결함은 공개 장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NSA는 일찍이 비트코인을 주목해왔다. 스노든이 유출한 기밀문서에 의하면, NSA는 2013년 이후 '오크스타OAKSTAR’라는 코드명으로 비트코인 네트워크 참여자들을 감시했고 오크스타의 하위 프로그램인 '몽키로켓MONKEYROCKET’은 네트워크 장비를 이용해 유럽, 중동, 아시아, 중남미에서 데이터를 수집했다. 즉, NSA는 비트코인으로 거래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신원뿐 아니라 이들의 비밀번호 정보, 인터넷 활동, MAC 주소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 관련 거래소를 통제하고 KYC/AML(Know Your Customer - 고객 신원 확인 /Anti Money Laundering - 자금 세탁 방지)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이렇게 되면 NSA는 전 세계 비트코인의 흐름을 추적하고 이와 연관된 사람들을 감시 및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는 셈이다.

그토록 강조한 '탈중앙화’의 이상은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의 저자는 단언한다. 그런거 없다고. 하지만 이상점이 사라졌다 해서 외면할 순 없다. 아니 그래선 안된다.

비트코인은 둥글다

지구는 평평한가 아니면 둥근가? 너무 바보같은 질문이라 여기겠지만 이 질문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살육을 당하고 역사는 새로운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원주민들에게 총쏘고 깃발만 꽂으면 새로운 땅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내재된 야망을 자극했다. 당연히 그 소식은 지배층이 가장 먼저 접했다. 그리고 지배층은 당연히 깃발을 더 많이 꽂기 위해 선단을 꾸렸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겐 머나먼 얘기였다. 정보와 자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그저 떠도는 소문일 뿐 실제하지 않는 세상이었고 그들에게 지구는 계속 평평했다.

인류는 이런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지구에 있는 모든 곳을 알아보고 개발했다. 단순히 개발한 것 뿐만 아니라 인공위성을 날려 24시간 감시까지 진행했다. 그럼에도 인류에겐 계속해서 새로운 개척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개척지가 비트코인이다.

선릉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알트코인 사기꾼 업자도, 리브라를 만든다는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도, 이젠 없어선 안될 카카오톡의 카카오 그라운드X도 이 개척지에 깃발을 꽂으려 하고 있다.

이 깃발꽂기의 경쟁자는 단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공부를 할 때도, 데이트를 할 때도, 업무상 미팅을 할 때 커피를 열심히 대접해주던 스타벅스가 군침을 흘리고 있고, 맥북과 앱스토어로 익숙한 애플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은? 당연한걸 묻지 말자.

한 마디로 정리해서 모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비트코인은 대항해시대다.

대항해시대 - 출처 넷마블

제국의 관점으로 봐야 보인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2020년 3월 10일 한은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 응답자의 97.9%가 예금계좌를 보유하고 있고, 신용카드는 81.3%, 체크(직불)카드는 68.8%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우리의 맥락으로만 보면 왜 비트코인이 대항해시대라고 할 수 있는지 공감할 수 없다.

정말 제대로 보고 싶다면 제국의 시선으로 넓게 봐야 한다.

책 173~174페이지를 보자.

전 세계 17억 명은 은행 계좌가 없고 이 중 약 67퍼센트는 모바일 기기를 사용한다. 은행 인프라가 낙후된 곳은 법정 화폐 가치 또한 불안정해서 비트코인의 인기가 높다. 따라서 중남미, 동남아, 아프리카는 스타벅스의 먹잇감이 되기 쉬운 상황이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2018년 10월 아르헨티나 현지 은행 방코 갈리시아와 파트너십을 맺고 스타벅스 은행 지점을 오픈했다. 물론 비트코인 이야기는 쏙 빼고 고객의 경험, 편의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아르헨티나는 베네수엘라와 더불어 비트코인의 인기가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제국의 시선은 한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제국이 하는 행위를 세계경영이라고 하지 않나. 좁은 관점을 버리고 멀리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생존전략이 보인다. 좋든 싫든 이들이 한 번 흐름을 만들고 표준을 만들면 그 표준을 따라야 한다. 특히 한번 표준이 설정되고 그 경로를 따라 발전하다보면 거기에 의존성이 생겨 다른 방향으로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경제추격론에서 말하는 경로의존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제국의 관점과 생존전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